비닐봉지 없는 마켓·텀블러 대여 카페…반가워요 `윤리적 소비` (매일경제)
광교신도시의 신개념 유기농 신선마트 다곳에서는 청년농부와 직거래한 식재료를 다듬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한나 기자]
한국서 자리잡는 친환경 자원재생·재활용 문화
작년 일회용 컵 금지 이후
사용량 年 2400만개 줄어
광고필름 재활용·친환경 잡화…
2040세대 호응 얻으며 안착
새활용플라자 月 5천명 교육
40개 업사이클 기업도 입주
이한나, 이유진, 김하경 기자
◆ 착한 소비, 세상을 바꾼다 ⑤ ◆
한낮 최고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올랐던 지난 6일 무더운 토요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에 위치한 `보틀팩토리`는 인산인해였다. 카페들이 즐비한 연희동 메인 골목에서 벗어나 주택가 한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가 북적거렸다.
1년 전쯤 오픈한 `보틀팩토리`는 카페와 제로 웨이스트 숍, 텀블러 대여 서비스를 동시에 운영하는 독특한 콘셉트 매장이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청년 두 명이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플라스틱을 아예 쓰지 않는 카페를 열기로 결심하며 탄생했다.
테이크아웃하려는데 텀블러가 없다면 매장에서 대여해야 한다. 쓴 후 매장에 돌려주면 일종의 적립금처럼 쌓여 나중에 음료를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매장에는 손님이 직접 텀블러를 세척할 수 있는 싱크대도 있다.
지난 4월부터 매달 한 번씩 유기농 식료품과 개별 포장이 안 된 제품을 판매하는 마켓 `채우장`이 열리는데,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고객들이 직접 장바구니나 재사용 가능한 용기를 가져와 필요한 만큼만 담고, 무게를 달아 구매하는 형식이다.
상품 종류는 꽤 다양하다. 참기름, 깨, 과일, 채소, 디저트부터 생활용품이나 세제도 판다. 한 판매자는 "부모님이 직접 담양에서 재배한 채소를 판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 있는 그래놀라는 개장 2시간 만에 동이 날 정도였다. 한 20대 고객은 "보틀팩토리를 알게 된 후 일회용품을 안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채우장까지 찾게 됐다"며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들은 매장 취지를 알고 공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커피전문점 등 식품접객업으로 등록된 매장 내에서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했다. 지난해 6월부터 주요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등 21개 업체가 환경부와 자율협약을 맺고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을 자제한 결과 1년 만에 일회용컵 사용이 2408만개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매장에서 사용한 일회용컵 수거량도 지난해 7월 206t에 달했으나 올해 4월엔 58t으로, 9개월 만에 72%나 줄었다.
최근 심해진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폐기물 사태로 환경에 대한 국민 인식도 바뀌고 있다.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집중 탐구해온 미국 작가 크리스 조던의 `아름다움 너머` 전시는 서울과 부산에서 관람객을 각각 1만4000명, 2만5000명 모았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은진 플랫폼C 대표는 "성곡미술관 같은 주류 미술관에서 유치한 것도, 환경 관련 전시에 이렇게 많은 관람객이 든 것도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체계화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여러분, 지금은 쓰레기 중에 9%만 재활용된대요. 계속 쓰고 버리고 반복하면 2050년엔 120억t에 달하는 쓰레기가 묻히는 거예요. 이제부터 바꾸지 않으면 여러분이 마흔세 살이 될 때면 지구가 쓰레기 더미가 될 거예요."
지난달 28일 서울 성동구 새활용플라자 교육장. 쓰레기 더미 화면이 바뀌더니 쓰레기를 녹여 찍어낸 색색의 그릇, 암벽등반용 손잡이, 휴대폰 케이스가 등장했다.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던 서울 서초구 신동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 28명이 "우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들은 업사이클링 교육인 `소재 구조대` 프로그램에 참여해 쓰다 버린 생활용품을 분해해 쓸 수 있는 소재끼리 모으는 작업을 했다. 아이들은 장갑과 고글을 장착하고 키보드 분해 작업을 시작했다. 15분 만에 테이블은 반쪽으로 쪼개진 키보드와 튀어나온 자판들로 가득했다. 플라스틱 자판과 금속 나사뿐만 아니라 자판을 튀어오르게 하는 스프링, 실리콘까지 다양한 소재가 나왔다. "이건 어디다 놔야 하는 거야?" "철사랑 플라스틱은 다르잖아." 아이들은 스스로 분해된 부품을 종류별로 상자에 나눠 담았다.
아이들이 분해하는 키보드는 도시금속회수센터에서 기증받은 물건이다. 대표적인 분해 작업물인 장난감 물총도 신촌물총축제에서 쓰고 남은 것들을 활용한다.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새활용플라자는 `새활용(업사이클)`에 대해 알리는 세계 최대 규모 단일 건물(지하 2층~지상 5층에 연면적 1만6530㎡)이다. 이곳에서 교육을 체험하는 인원만 월 5000명가량 된다. 36개 프로그램에 1만7000여 명이 참가했고, 총 10만6337명이 이곳을 방문했다. 유치원·초등학교 등 단체 관람부터 주말 가족 단위 개인 관람객도 적지 않다.
윤대영 서울새활용플라자 센터장은 "이제까지는 뭔가를 만들고 혁신하는 것에만 집중해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었다"며 "새활용플라자에서는 제조 외에 폐기 단계까지 생각해, 꼭 만들어야 할 제품만 만들고, 버릴 물건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도록 알린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의류를 리폼하는 디자인업체 `젠니클로젯`, 전자제품을 수리하는 `인라이튼`, 폐석재를 리사이클하는 `에코스톤코리아`, 광고필름을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리스트`, 자투리 스펀지로 치매환자 교육용 키트를 만드는 `플레이31` 등 40개 업체가 입주했다.
지속 가능 패션 브랜드 `나우`도 저변 확대에 적극적인 곳이다.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을 전 세계에서 찾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하는 `나우매거진`을 발간하고, 도산공원 인근 `나우하우스`에서 매달 지속 가능한 마켓을 연다. 친환경 패션·잡화 브랜드가 참여하고 천연 염색 클래스 등에서 직접 체험할 기회도 제공한다. 나우 관계자는 "지속 가능성이란 이해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더 많은 사람이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이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며 "최근 젊은 층 사이에 소비 행태 변화가 감지된다"고 전했다.
얼마 전 `한국형 클린 뷰티`를 목표로 내건 신생 화장품 브랜드 `스킨그래머`도 등장했다.
모든 제품에 착한 성분을 포함시킨 것은 물론 패키지까지 처음부터 재활용할 수 있고 생분해가 가능하게 했다. 배송 포장재도 `지아미`라는 친환경 완충재와 종이 테이프를 활용한다.
브랜드를 론칭한 김도균 베이식스 대표는 "두 딸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K뷰티가 이제 제품력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 브랜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다음달 출시될 신제품은 재활용한 PET나 폐유리를 섞은 용기에 담아 판매할 예정이다.
<시리즈 끝>
[기획취재팀 = 이한나 기자 / 이유진 기자 / 김하경 기자]
출처 :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9/07/561268/